일본 SEMT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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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율 (112.♡.115.44) 작성일16-01-11 19:22 조회885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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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SEMT를 다녀왔다. 사실 처음으로 조장을 맡아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첫째날에는 공항에 모여서 짐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서 일본에 도착하였다. 공항은 어릴 때 몇번 갔는데 기억이 잘 안났다. 가보니 크고 사람이 많았다. 가는 과정이 복잡하기도 했지만 나한테는 무척 신기하였다. 비행기에서 본 일본은 작아서 잘 안보였지만 높은 건물들이 많았고, 차가 왼쪽으로 다녔다. 창문으로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가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가 많이 되었다. 일본의 한 식당에서 맛있는 '돈멘'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세숫대야만한 크기에 나왔다. 면이 오동통통하여서 한 적가락 만으로도 아주 입안이 가득 채워졌다. 튀김이나 오뎅같은 것 돈멘에 잘 어울였다. 후쿠오카에 있는 고쿠라 리가 로얄 호텔에서 본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책자를 썼다. 나는 2단계인 물병을 받았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고쿠라 리가 로얄 호텔에서 주희와 채원이랑 잠을 잤다. 금방 어색하지 않게 되어서 잠을 편하게 잤던 것 같다.
둘째날, 본격적으로 SEMT가 시작되었다. 아침말씀묵상을 하고, 아침밥으로 조식뷔페를 먹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음식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였다. 오전에는 시모노 새키에 있는 아카마 신궁과 조선통신사 상륙비, 미야지마에 있는 이츠쿠니마 신사와 와캬야성과 모미지나니 공원을 갔다.
아카마신궁은 안토쿠 신을 모시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일본의 종교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신도이다. 그런데 천황과 관련 된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은 신궁이라고 부른다. 조선통신사는 외교 사절단라고 할 수 있다. 300~500명으로 구성되어 부산에서 시모노 새키, 오사카, 교토, 훗날 도쿄까지 이동하였다고 한다. 과학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그 거리를 갔다는 것을 대단한 것 같다. 그 조선통신사 상륙비를 보았다. 우리 조상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다음으로 미야지마에 이동하였다. 신사의 섬이고, 일본의 3대 절경으로 꼽힐 만큼 아주 아름답다. 감탄을 많이 하지 않는 나도 감탄을 굉장히 많이 하였다. 이츠쿠니마신사는 이츠쿠니마 섬에 있는데 밀물때에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그리고 와카야 성과 모미지 다니 공원에 갔다. 흐르는 물이 참 소리도 보기도 좋았다. 이 때 일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웃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쓰레기 한 점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밥을 먹었다. 일식세트를 먹었다.
미소 된장국, 여러가지 나물과, 치킨, 고기 등이 있었는데 되게 고소하고 계속 먹고 싶은 맛 이었다. 오후에는 원폭이 터진 히로시마를 갔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어마어마 했다고 한다.
3000도의 뜨거운 열과 1초에 4400m 까지 날아가는 2km 안의 피해와 12km에서도 보면 실명될 정도의 엄청난 빛까지 말로 다 말할 수 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것을 담은 박물관에 갔다. 잘못도 없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죽은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강제저으로 이주당하여 왔다가 한국인 10%로가 죽은 사건도 바로 원폭이었는데 죄 없지 죽은 조선인이 너무 불쌍하였다. 위령비 앞에서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였다. 그 당시의 날아가지 않고 형태만 남긴 원폭돔과 평화를 위해 지은 평화기념공원도 갈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저녁으로 현지식을 먹었는데 내가 일본에서 먹은 음식중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주 많이 먹었다. 배가 아~주 부른 정도로 말이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했는데 대형마트였다. 크고 없는 것 빼곤 다 있었다. 여기서 돈으로 여러가지를 샀다. 만족스러웠다. 어느 덧 밤이 다 되어서 책자를 쓰고 히로시마 리가로얄 호텔에서 서정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셋째날에도 아침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아침 말씀묵상을 한다음 조식뷔페를 먹고 오사카로 이동하였다.오사카 성을 갔다. 여기서'와, 내가 정말 일본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박물관을 쭉 보고 전망대에 갔는데 굉장히 시원하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마음 속 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점심에는 일본의 대표음식인 초밥과 우동을 먹었다. 나는 원래 회 초밥을 안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는 회 초밥이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래서 다 먹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랑은 비교가 안 되었다. 오후에는 신사이바시- 도톤보리를 갔다. 먹.자.골.목! 조원이 준 다코야끼를 먹어봤는데 우리나라랑 달았다. 원래 안 좋아했다. 그런데 참 맛있었다. 저녁으로 한식 요리집을 가서 먹어는데 한국에서 먹은 것 같았다. 그리웠던 맛이었다.오사카 호텔로와서 강의를 듣고 기도를 하고 퀴즈타임을 하고 책자를 쓰고 잠이 들었다.
넷째날, 아침말씀묵사을 하고 조식 뷔페를 먹고서 교토를 갔다. 금각사와 동대사-사슴공원을 갔다. 금각사는 건물 층마다 건축양식이 다른데 1층은 헤이안시대의 후지와라의 가문 귀족풍, 2층을 무사들의 저택의 양식픙. 3층은 당나라의 불교양식이라고 한다. 섬처럼 떠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금박으로 둘러싸여있어서 반짝반짝했다.
동대사가는 길에 사슴공원이 있다. 사슴이 약 1100마리 정도 있는데 사슴피하랴 사슴 똥 피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피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동대사에 갔는데 많은 문화재가 있다. 그중에는 약 14미터가 넘는 푼 불상이 있는데 눈만 해도 1m가 되고 귀만해도 3m가 된다고 한다. 정~~말 컸다. 다 보기도 어려웠다. 일본사람들이 기독교를 많이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점심으로 일본 사람들의 평소 음식을 상으로 차린 식당을 샀다. 일본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들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일본음식은 입맛에 안 맞지는 않아서 많이 먹었다.특히 미소된장국과 새우튀김이 맛있었다. 오후에는 귀무덤과 왕인박사묘, 호류지를 갔다. 귀무덤은 도요툐미 히데요시가 일본사람들의 귀를 잘라오라고 시켜서 많은 숫자대로 명예와 돈을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코를 잘라오라고 했다는데 참 끔찍했다. 절로 "으~' 소리가 나왔다. 마음이 아픈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앞에 있어서 진정하게 미안한 마음이 아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무덤을 만든 것 같았던 것 이었다. 다음으로 왕인박사묘를 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삼국시대때 일본이 백제에게 똑똑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해서 간사람이 바로 왕인 박사인데 한자, 한문 , 불교등을 알려주었다. 지금의 일본은 왕인박사덕분이라고 해도 엄청난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사람들도 왕인박사는 인정을 한다. 또 청수사를 갔는데 물줄기
3개가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각 사랑, 공부, 건강 등이 있다. 이것을 마시려고 줄을 길게 서는 경우가 많다. 여러군데를 가고 허기진 배를 달랬던 저녁식사는 일본식 샤브샤브였다. 고기가 앏고 고소해서 더 시켜셔 먹었고 우동도 마찬가지 였다. 우리나라 샤브샤브와는 다르게 우동을 넣는데 새로웠다. 거기다가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 '캬~!"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날 역사강의를 하고, 기도를 하였다. 일본을 위해서 기도하고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진심으로 했다. 정말 이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이 일본에게 기독교가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일본캠프를 갔다오며...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가깝지만 먼나라, 일본과 좋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이땅은 예수님(복음)을 전해야 되는 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열심히 쓴 이 책자와 이 SEMT는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은혜와 축복이다. 일본을 안 가본 사사리더들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주고 싶다. 많은 캠프에 참석하고 싶다.
* 본부장님이 내주신 숙제는 1번 큰절하기 하였고 2번 설명하기 (동생과 합쳐 2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4번은 언제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행문이 순서가 바뀌거나 오타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일본캠프를 위해 고생하신 선생님들과 본부장님,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첫째날에는 공항에 모여서 짐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서 일본에 도착하였다. 공항은 어릴 때 몇번 갔는데 기억이 잘 안났다. 가보니 크고 사람이 많았다. 가는 과정이 복잡하기도 했지만 나한테는 무척 신기하였다. 비행기에서 본 일본은 작아서 잘 안보였지만 높은 건물들이 많았고, 차가 왼쪽으로 다녔다. 창문으로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가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가 많이 되었다. 일본의 한 식당에서 맛있는 '돈멘'이라는 것을 먹었는데 세숫대야만한 크기에 나왔다. 면이 오동통통하여서 한 적가락 만으로도 아주 입안이 가득 채워졌다. 튀김이나 오뎅같은 것 돈멘에 잘 어울였다. 후쿠오카에 있는 고쿠라 리가 로얄 호텔에서 본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책자를 썼다. 나는 2단계인 물병을 받았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고쿠라 리가 로얄 호텔에서 주희와 채원이랑 잠을 잤다. 금방 어색하지 않게 되어서 잠을 편하게 잤던 것 같다.
둘째날, 본격적으로 SEMT가 시작되었다. 아침말씀묵상을 하고, 아침밥으로 조식뷔페를 먹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음식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였다. 오전에는 시모노 새키에 있는 아카마 신궁과 조선통신사 상륙비, 미야지마에 있는 이츠쿠니마 신사와 와캬야성과 모미지나니 공원을 갔다.
아카마신궁은 안토쿠 신을 모시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일본의 종교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신도이다. 그런데 천황과 관련 된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은 신궁이라고 부른다. 조선통신사는 외교 사절단라고 할 수 있다. 300~500명으로 구성되어 부산에서 시모노 새키, 오사카, 교토, 훗날 도쿄까지 이동하였다고 한다. 과학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그 거리를 갔다는 것을 대단한 것 같다. 그 조선통신사 상륙비를 보았다. 우리 조상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다음으로 미야지마에 이동하였다. 신사의 섬이고, 일본의 3대 절경으로 꼽힐 만큼 아주 아름답다. 감탄을 많이 하지 않는 나도 감탄을 굉장히 많이 하였다. 이츠쿠니마신사는 이츠쿠니마 섬에 있는데 밀물때에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그리고 와카야 성과 모미지 다니 공원에 갔다. 흐르는 물이 참 소리도 보기도 좋았다. 이 때 일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웃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쓰레기 한 점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밥을 먹었다. 일식세트를 먹었다.
미소 된장국, 여러가지 나물과, 치킨, 고기 등이 있었는데 되게 고소하고 계속 먹고 싶은 맛 이었다. 오후에는 원폭이 터진 히로시마를 갔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어마어마 했다고 한다.
3000도의 뜨거운 열과 1초에 4400m 까지 날아가는 2km 안의 피해와 12km에서도 보면 실명될 정도의 엄청난 빛까지 말로 다 말할 수 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것을 담은 박물관에 갔다. 잘못도 없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죽은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강제저으로 이주당하여 왔다가 한국인 10%로가 죽은 사건도 바로 원폭이었는데 죄 없지 죽은 조선인이 너무 불쌍하였다. 위령비 앞에서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였다. 그 당시의 날아가지 않고 형태만 남긴 원폭돔과 평화를 위해 지은 평화기념공원도 갈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저녁으로 현지식을 먹었는데 내가 일본에서 먹은 음식중 가장 맛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주 많이 먹었다. 배가 아~주 부른 정도로 말이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했는데 대형마트였다. 크고 없는 것 빼곤 다 있었다. 여기서 돈으로 여러가지를 샀다. 만족스러웠다. 어느 덧 밤이 다 되어서 책자를 쓰고 히로시마 리가로얄 호텔에서 서정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셋째날에도 아침은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아침 말씀묵상을 한다음 조식뷔페를 먹고 오사카로 이동하였다.오사카 성을 갔다. 여기서'와, 내가 정말 일본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박물관을 쭉 보고 전망대에 갔는데 굉장히 시원하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마음 속 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점심에는 일본의 대표음식인 초밥과 우동을 먹었다. 나는 원래 회 초밥을 안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는 회 초밥이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래서 다 먹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랑은 비교가 안 되었다. 오후에는 신사이바시- 도톤보리를 갔다. 먹.자.골.목! 조원이 준 다코야끼를 먹어봤는데 우리나라랑 달았다. 원래 안 좋아했다. 그런데 참 맛있었다. 저녁으로 한식 요리집을 가서 먹어는데 한국에서 먹은 것 같았다. 그리웠던 맛이었다.오사카 호텔로와서 강의를 듣고 기도를 하고 퀴즈타임을 하고 책자를 쓰고 잠이 들었다.
넷째날, 아침말씀묵사을 하고 조식 뷔페를 먹고서 교토를 갔다. 금각사와 동대사-사슴공원을 갔다. 금각사는 건물 층마다 건축양식이 다른데 1층은 헤이안시대의 후지와라의 가문 귀족풍, 2층을 무사들의 저택의 양식픙. 3층은 당나라의 불교양식이라고 한다. 섬처럼 떠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금박으로 둘러싸여있어서 반짝반짝했다.
동대사가는 길에 사슴공원이 있다. 사슴이 약 1100마리 정도 있는데 사슴피하랴 사슴 똥 피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피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동대사에 갔는데 많은 문화재가 있다. 그중에는 약 14미터가 넘는 푼 불상이 있는데 눈만 해도 1m가 되고 귀만해도 3m가 된다고 한다. 정~~말 컸다. 다 보기도 어려웠다. 일본사람들이 기독교를 많이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점심으로 일본 사람들의 평소 음식을 상으로 차린 식당을 샀다. 일본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들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일본음식은 입맛에 안 맞지는 않아서 많이 먹었다.특히 미소된장국과 새우튀김이 맛있었다. 오후에는 귀무덤과 왕인박사묘, 호류지를 갔다. 귀무덤은 도요툐미 히데요시가 일본사람들의 귀를 잘라오라고 시켜서 많은 숫자대로 명예와 돈을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코를 잘라오라고 했다는데 참 끔찍했다. 절로 "으~' 소리가 나왔다. 마음이 아픈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앞에 있어서 진정하게 미안한 마음이 아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무덤을 만든 것 같았던 것 이었다. 다음으로 왕인박사묘를 갔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삼국시대때 일본이 백제에게 똑똑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해서 간사람이 바로 왕인 박사인데 한자, 한문 , 불교등을 알려주었다. 지금의 일본은 왕인박사덕분이라고 해도 엄청난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사람들도 왕인박사는 인정을 한다. 또 청수사를 갔는데 물줄기
3개가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각 사랑, 공부, 건강 등이 있다. 이것을 마시려고 줄을 길게 서는 경우가 많다. 여러군데를 가고 허기진 배를 달랬던 저녁식사는 일본식 샤브샤브였다. 고기가 앏고 고소해서 더 시켜셔 먹었고 우동도 마찬가지 였다. 우리나라 샤브샤브와는 다르게 우동을 넣는데 새로웠다. 거기다가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 '캬~!"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날 역사강의를 하고, 기도를 하였다. 일본을 위해서 기도하고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진심으로 했다. 정말 이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이 일본에게 기독교가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일본캠프를 갔다오며...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가깝지만 먼나라, 일본과 좋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이땅은 예수님(복음)을 전해야 되는 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열심히 쓴 이 책자와 이 SEMT는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은혜와 축복이다. 일본을 안 가본 사사리더들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주고 싶다. 많은 캠프에 참석하고 싶다.
* 본부장님이 내주신 숙제는 1번 큰절하기 하였고 2번 설명하기 (동생과 합쳐 2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4번은 언제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행문이 순서가 바뀌거나 오타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일본캠프를 위해 고생하신 선생님들과 본부장님, 너무 수고하셨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댓글목록
v서진v님의 댓글
v서진v 아이피 58.♡.115.203 작성일우와 짱 길어
권에스더님의 댓글
권에스더 아이피 119.♡.13.79 작성일대~~~~~~~~~~~박
v서진v님의 댓글
v서진v 아이피 211.♡.203.53 작성일이건 완전 일기장같은데
이기윤님의 댓글
이기윤 아이피 211.♡.243.197 작성일읽는데 10분이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