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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하람 (121.♡.246.145) 작성일07-11-20 16:58 조회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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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그림을 공부할 때 수많은 미술양식들을 소화하여 화가로서 뛰어난 기술적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고유한 미술양식이 무르익은 것은 1920년대말 두 가지의 계기가 있은 뒤였다. 하나는 잠재의식의 심상이 갖고 있는 성적인 의미에 관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저서를 접하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이성을 지배하는 잠재의식의 '더 위대한 실체'를 확립하고자 애쓴 예술가와 문필가들의 모임인 파리 초현실주의파에 가입한 일이다. 달리는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심상을 끌어내기 위해 환각적 상태를 유발했는데, 이 과정을 스스로 '편집광적 비판'이라고 불렀다.


이 방법을 발견한 뒤 달리의 그림 양식은 놀라울 만큼 빨리 무르익었고, 1929~37년에 그린 그림들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가 되었다. 그는 평범한 물건들을 병치시키거나 기형으로 만들어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변형시킨 환상세계를 묘사했다. 고향 카탈루냐를 연상시키는, 황량하고 햇빛이 따가운 풍경 속에 극도로 사실적으로 꼼꼼하게 묘사한 물체들을 배치시켰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기억의 집념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으로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에 녹듯이 흐늘거리는 시계들이 늘어져 있는 상황을 그린 것이다. 달리는 또한 스페인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2편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1928)와 〈황금시대 L'Âge d'or〉(1930)를 제작했는데, 이 영화들 역시 기괴하고도 매우 암시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1930년대말 달리는 르네상스 화가인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아 좀더 전통적인 양식의 그림으로 전환했고, 그 결과 초현실주의파에서 제명당했다. 그뒤 연극무대와 고급상점의 실내장식을 설계하고 보석을 디자인하는 일을 주로 했으며, 1940~55년에는 미국에서 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현란한 묘기로 행위미술에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달리는 1950~70년에 종교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한편으로 계속 성적인 주제를 탐구해 어린시절의 추억을 재현하며 아내 갈라와 연관된 주제를 자주 사용했다. 이러한 후기 그림들은 뛰어난 기교를 보여주고 있지만 초기 작품만큼 높이 평가되지는 않는다. 달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숨겨진 생애 The Secret Life of Salvador Dali〉(1942~44)라는 책에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흥미롭게 드러내고 있다.


라고 되어있는데여...


삶과제는 기억에 고집인데 왜 여기선 기억의 집념이라고 되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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